리처드 카라파즈: 새로운 챕터

에콰도르 출신의 리처드 카라파즈(Richard Carapaz)는 자국의 이름을 드높이는 라이더들 사이에서 특히 중심적인 인물입니다. 에콰도르 안데스 산맥에서 수련한 리처드와 그의 동료들은 주로 콜롬비아 출신의 선수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사이클링 기량을 겸비하고 있지만 상과는 인연이 없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리처드는 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에콰도르인으로서는 처음이자 유일한 그랜드 투어 우승을 거머쥐며 사이클링 스포츠 역사에 에콰도르의 이름을 빛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사이클링 레이스가 점차 가까워지며 라파에서는 오프시즌 EF 에듀케이션-이지포스트에서 야심 차게 영입한 유망주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운동선수로의 우연한 입문부터 사이클링 무대에서 명성이 자자한 레이스 우승과 자신의 유소년 사이클링 클럽 설립까지, 에콰도르, 투르 그리고 그 너머로 계속되는 리처드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무엇에서 영감을 받아 사이클리스트를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하셨나요?

글쎄요, 사이클링 여정의 시작은 그리 일반적이진 않았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자전거 타는 걸 좋아했지만 그 나이에 프로 스포츠로서의 사이클링을 알 리 만무했어요. 제게 자전거는 교통이자 놀이의 수단, 그게 전부였어요.

하지만 16살이 되었을 때 에콰도르 출신의 전 프로 선수인 후안 카를로스 로세로를 만났습니다. 한때 걸출한 실력을 과시한 에콰도르 스포츠 스타였는데, 이탈리아에서 펩시 콜라 파니니 팀에서 활동했었지요. 어쩌다 보니 그는 제 멘토로서 프로 사이클링의 세계에 입문하는 데, 나아가 자전거 레이서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조언을 아낌없이 나눠주었습니다. 단순히 재미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프로로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프로 전향 시 걸림돌은 없었나요?

2013년에 처음으로 유럽에 왔습니다. 한동안은 프랑스에서 자전거를 탔어요. 더불어 에콰도르 대표팀 소속으로 자국 캘린더의 여러 레이스에 참가했습니다. 시작은 순조로웠지만 유럽에서 적절한 팀과 연을 맺을 운까지는 없었어요. 그래서 한 일 년 후쯤에 남아메리카로 복귀해 레이스가 일상인 나날을 마주했습니다. 저 자신의 가능성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가늠하게 된 시기였어요. 유럽 팀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선수들의 실력을 알리고 보여 줄 굵직한 레이스는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콜롬비아에서 진행된 레이스의 중요한 스테이지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제 잠재력을 입증했고, 운 좋게도 스페인 2부팀 영입을 제안받았습니다.

다른 라틴 아메리카 선수들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EF에 합류했을 때 참 특별한 느낌을 받았어요. 사실 세페다는 제가 8, 9살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저와 놀랍도록 비슷한 여정을 걸어왔어요. 안장 위에서 저희 둘의 삶이 거의 같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요. 무엇보다 둘 다 동일한 꿈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이제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 꿈을 공유하고 좇을 수 있게 됐으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카이세도와도 오래도록 알고 지냈습니다. 처음부터 같이 훈련한 사이거든요. 

이런 동료들이 있다면 즐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도 익숙하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을뿐더러,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월드투어에서 라이딩한다면 음식부터 이동, 훈련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희생이 뒤따르는데요. 프로들이 감내하는 가장 큰 희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예로 들어주신 것이 희생이라고 느껴지진 않습니다. 아시겠지만 각자 그럴만한 이유가 있잖아요. 제게 가장 큰 희생은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입니다. 집에서 나와 있는 동안 생일이나 기념일 등은 챙기기 어렵습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진정한 희생이지 않을까 싶어요. 제 경우에는 가족이 에콰도르에 있지만, 저는 유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요. 하지만 오히려 이 현실을 원동력으로 활용하곤 합니다. 이렇게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프로로 활동한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되뇌면서요. 제가 놓치고 있는 그 전부를 위해서 전력을 다하고 있으니 가치는 충분합니다. 언제나 이 모든 희생을 생각하며 꾸준히 나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 어떻게 일과 가족 사이에 균형을 잡으세요? 매일 전화하는 것처럼 일종의 의식이 있나요? 

시즌 동안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그랜드 투어 등을 준비한다면 거의 가족과 떨어져 있어요. 보통은 매일 통화해요. 아내에게, 딸과 아들에게 매일 전화하지요. 요즘 세상에는 연락하는 게 참 쉬워졌잖아요. 홀로 동떨어져서 완전히 고립된 상황은 아니니까요. 실제로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습니다. 그랜드 투어 기간에는 주로 제 가족이 마지막 주에 저를 보러 와요. 아니면 아이들 방학에 맞춰서 여름을 여기서 지내도록 계획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저와 여름 동안 시간을 보낸 후 에콰도르로 돌아갑니다. 뭐, 그렇습니다. 가족을 생각하면 아쉽고 애틋한 마음이 참 큰데, 결실을 얻기 위해 해야 할 일도 있으니까요. 

리처드가 올림픽에서 우승을 거둔 이후 에콰도르에서 사이클링에 대한 관심이 확연히 높아진 것 같아요. 물론 다른 많은 우승도 참 중요하지만, 특히 리처드의 우승은 대대적인 변화의 기반을 마련한 것처럼 보입니다. 

2021년 올림픽 이후 에콰도르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뛰어난 성적을 여럿 거두었지만 올림픽은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잖아요. 비단 사이클링 팬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 팬이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에콰도르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많은 어린 세대가 앞다투어 사이클리스트를 목표로 삼게 된 계기였습니다.

에콰도르의 사이클링 역사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는데요. 이를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가요? 

에콰도르에는 사이클링 전통이 별로 없어요. 아주 새롭고 생소한 분야라고나 할까요. 따라서 콜롬비아의 사이클링 전통을 조금이나마 도입하고, 국가 내 인재를 찾아내고, 에콰도르 출신으로 지금 월드투어에서 경쟁하는 저희의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수십 년 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고, 사이클링 전통에서 비롯하지 않은 것이기도 한데요. 

저는 언제나 사이클링 무대에서 제가 배운 것을 관심 있는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길을 소개하고, 사이클링이 삶의 방식이라는 걸 알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저 나름대로 이에 보탬이 되고자 제 이름을 본뜬 사이클링 클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이클링을 매개체로 많은 아이의 삶이 변화하도록 돕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은퇴하면 여기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싶습니다. 클럽과 폭넓은 지식을 공유하고, 새로운 아이들을 모으고, 인재를 발굴하고요. 두각을 드러내는 친구가 있다면 최대한 많은 지원을 제공하고 싶어요. 안장 위에서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요. 제게 너무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